고등학생 시절에 영어 단어를 외우기 위해 종이에 단어를 한가득 채워 쓰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쌓여가는 볼펜의 개수가 꼭 높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공부를 잘하려면 암기도 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하더라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여러 번 반복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면 과학적으로 검증된 ‘공부 잘하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반복학습보다 인출연습>
가장 보편적인 공부법은 아마도 ‘반복해서 읽기' 이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다. 사실 얼마나 많이 반복하는가보다는 한번을 하더라도 얼마나 제대로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
1975년에 이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여러 단어를 제시하면서 단어에 관한 몇가지 과제를 주었다. 단어의 글자가 대문자인지 소문자인지(시각적 처리 과제), 단어가 다른 단어랑 운율이 맞는지(청각적 처리 과제), 단어가 문장의 빈칸에 들어가도 되는지(의미적 처리 과제)를 판단하게 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단어를 외우라는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단어 처리 과제를 마친 실험 참가자들에게 예고하지 않은 깜짝 테스트를 시행해서 얼마나 많은 단어를 기억하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아마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시각 또는 청각으로 정보를 처리했던 단어보다 의미를 따져 처리한 단어를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다. 즉, 더 복잡하고 의미 있는 정보 처리를 할수록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미를 되새기며 교과서를 여러번 되풀이해 읽으면 기억에 도움이 될까? 연구에 따르면, 그저 반복해 공부하는 것보다는 중간에 시험을 치르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의 헨리 로디거 교수가 2006년 이와 관련한 실험을 했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과학 내용이 담긴 교재 자료를 제시하고서 공부하게 했다. 일부 학생들은 자료를 두번 반복해서 공부했고, 다른 학생들은 한번 공부하고 연습시험을 한번 치렀다. 5분 뒤 자료 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검사한 결과에서는, 반복 학습한 학생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주일 뒤 다시 시행한 검사에서는 결과가 뒤집혔다. 한번 공부하고 연습시험을 봤던 학생들이 시험 없이 반복 학습만 했던 학생들보다 실제 시험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즉, 반복 학습을 통해 정보를 여러번 저장하는 것과 비교해, 저장된 정보를 시험문제 풀이를 통해 인출하는(끄집어내어 떠올리는) 연습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연습시험이 그저 시험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은 아닐까? 다른 연구에서는 실제 시험과 연습시험의 형식이 다르더라도 연습시험이 반복 학습보다 더 나은 공부법이라는 결과가 제시됐다. 공부한 내용을 다시 읽으면 뇌에서는 이전에 저장된 정보만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험문제를 풀면서 답을 떠올릴 때는 저장했던 정보와 함께 관련된 다른 정보도 함께 활성화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지식과 새로 배운 정보가 통합되기도 하고, 관련이 없어 방해되는 정보는 억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출 연습을 한 정보는 좀 더 정교화되고 잘 기억될 수 있다.
반복해 읽는 학습법은 ‘많이 공부했다’는 만족감을 준다. 반면에 연습시험 문제를 풀다 보면 모르는 게 많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은 일단 학습을 한 다음에는 반복 학습보다 반복 인출 연습이 기억을 더 오래가게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교재에서 한 챕터가 끝날때마다 연습문제를 실전시험으로 풀고, 쪽지시험을 반복해서 보자. 챕터를 반복해 공부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학원에서 시험보는 연습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학업성취가 높은 것도 그 이유에서 이다. 효과적인 공부방법으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에서 가장 많은것을 가져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정수근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심리학) 일부 발췌 인용,